주말마다 멀리 떠나기엔 피곤하고, 그렇다고 카페에만 앉아 있기엔 하루가 아깝다. 이럴 때 미술관은 꽤 괜찮은 선택이 된다. 조용히 걷고, 사진 앞에서 잠시 멈추고,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주변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부담 없이 떠나기 좋은 이번 주말 문화 나들이다. 관람료는 무료지만 전시의 규모는 가볍지 않다. 마틴 파의 초기 작업부터 말년까지 이어지는 14개 시리즈, 사진 약 500점과 사진책 90권이 한자리에 놓인다. 작가 사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평범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바라본 사진가
마틴 파의 사진에는 거창한 영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 쇼핑카트를 끄는 사람, 관광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화면을 채운다.
장면만 보면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색은 유난히 선명하고, 구도는 조금 과하며, 인물의 행동은 이상할 정도로 솔직하다. 웃음이 먼저 나오다가도 잠시 뒤에는 ‘나도 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마틴 파는 소비와 관광, 취향과 허영을 멀리서 비판하지 않았다. 사람들 가까이 들어가 그들의 표정과 물건, 먹는 모습과 몸짓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진이 풍자처럼 보이면서도 차갑지 않은 이유다. 피사체를 조롱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속한 풍경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서울과 평양, 낯익어서 더 오래 보게 되는 장면
이번 전시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한국 관련 작업이다. 마틴 파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촬영한 평양과 서울의 사진도 함께 공개된다.
해외 관광지와 영국의 해변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도시의 장면을 만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다른 나라의 사진에서는 유머로 보였던 요소가 서울의 풍경에서는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거리와 사람도 누군가의 카메라 안에서는 한 시대의 표정이 된다는 사실이 조금 선명해진다.
사진을 잘 몰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전시
사진 전시는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마틴 파의 작품은 진입장벽이 낮다. 색이 강하고 장면이 직관적이라 설명을 읽기 전에도 먼저 눈이 반응한다.
그렇다고 가볍게만 끝나지는 않는다. 여행지에서 모두가 같은 포즈를 취하는 이유, 물건과 음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사진을 찍는 순간조차 다시 사진 속 장면이 되는 풍경이 이어진다. SNS를 통해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지금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와 3시에는 도슨트가 운영된다. 작품 배경을 조금 더 깊게 듣고 싶다면 해당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편이 좋다.
주말 방문 전 체크할 것
전시는 2026년 10월 18일까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2층과 3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토요일·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입장은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관람료는 무료다. 공식 페이지에 사전 예약 메뉴가 마련돼 있어 방문 전 예약 여부와 잔여 인원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진 한 장을 오래 바라볼 필요는 없다. 마음에 걸리는 색, 조금 우스운 표정, 이상하게 익숙한 장면 앞에서 잠시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는 대단한 예술 지식을 확인하는 전시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쉬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가볍게 들여다보는 시간에 가깝다. 미술관을 나선 뒤 거리의 사람들과 쇼윈도가 전보다 조금 다르게 보인다면, 그 주말은 이미 꽤 잘 보낸 셈이다.


